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기동전사 건담은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의 1988년 극장판 작품의 정식 한국 개봉작입니다. 일본 개봉 후 거의 40년만에 한국에 정식 개봉하여 우주세기 건담의 올드팬들에게는 큰 선물같은 일입니다. 건담의 올드팬인 필자도 이 기회에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역습의 샤아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5월7일 개봉하여 현재까지 2만명 누적매출액은 2억 정도를 달성한 것으로 나옵니다. 워낙 마니악한 작품이라 언제까지 상영할지는 모르겠으나 롯데시네마 예매 시스템에는 월드타워와 은평 롯데몰에서 27일까지 스케줄이 있습니다. 필자는 도곡점에 가서 봤는데 추가 상영 스케줄은 없는 것 같네요. 아마 월드타워에서는 조금 더 상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습의 샤아와 과거 한국
1988년 일본에서 매출이 11.3억엔(한화 약 110억) 기록하여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한국에도 여러가지 루트를 통해 들어왔었지요. 88년이면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사실 애니메이션은 불법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해서 유통했었지요. 서울에서는 용산을 중심으로 판매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필자도 90년대 초 동네 형이 비디오테이프로 틀어줘서 역습의 샤아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버블경제시대의 애니메이션은 지금 봐도 인정할 정도로 퀄러티가 높았기 때문에 당시 크게 감동받았지요. (어린이들이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 에도 열광하던 시대였음)
88년도 개봉이었으니까 아마 한국 사람 중에서 역습의 샤아를 극장에서 정식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 시대야 뭐 홈시어터에 고화질 DVD판으로 본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렇게 극장 스크린에서 본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꼭 스크린으로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습의 샤아 연관 작품들
필자는 건담 올드팬으로 역습의 샤아는 2-3번은 본 것 같습니다. 역습의 샤아를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79년작 TV 기동전사 건담, 85년작 TV 기동전사 Z건담 그리고 후일 공개된 2010년작 OVA 기동전사 건담UC 이 세 작품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주세기 건담에는 더블제타 등 다른 작품들도 많고 소설, 게임의 설정 등이 다양하게 있어서 설정의 충돌이란 것도 있고 평행세계 논란도 있긴합니다.
라라아 슨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아무로와 샤아 두 주인공이 기동전사 건담의 1년 전쟁과 기동전사 Z건담의 그리프스 전쟁을 거치면서 세웠던 대립과 연합의 최종 결말을 내려줍니다. 이 두 남자는 서로 반대되는 진영에 있지만 뉴타입간의 이끌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라라아 슨이라는 뉴타입 여성의 죽음으로 아무로와 샤아는 원수가 됩니다.
극중 아무로는 라라아 슨이 나타나는 악몽을 자주 꾸며, 샤아는 라라아 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비슷한 재능의 뉴타입인 퀘스 파라야를 기계처럼 이용합니다. (요즘말로 가스라이팅)
아무로와 샤아가 론데니온에서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최후의 액시즈 쇼크까지 두 사람은 라라아 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기동전사 건담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내용입니다.
두 주인공의 대립은 겉으로는 코로니 자치권을 요구하는 지오니즘과 이를 억누르고 지배하려는 지구연방의 갈등입니다만, 사실 라라아 슨, 이 전사한 뉴타입 여성을 둘러싼 치정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입니다. 샤아의 부하인 규네이 거스(강화인간)는 퀘스에게 샤아 대령은 아무로에 대한 복수로 운석을 지구에 떨어뜨리려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비하하는데(퀘스를 꼬시려는 목적도 있었다) 샤아의 여성관련 행적을 보면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 모릅니다.
코로니 자치권, 지오니즘 이런 가공의 이념들이 이해하기 어려워도 라라아 슨 중심의 이야기를 구성해봐도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아무로는 꿈속에서 라라아에게 ‘샤아를 부정하라’고 외치고, 샤아는 ‘라라아는 내 어머니가 되어 줬을지도 모르는 여성이었다’라는 명대사를 합니다. 라라아는 죽어서도 절대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이 삼각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연적으로 아무로와 샤아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운명입니다.
기동전사 Z건담의 샤아
기동전사 Z건담에서 샤아는 ‘크와트로 바지나 대위’ 라는 가명으로 에우고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등장합니다. 1년 전쟁의 7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기동전사 Z건담의 주인공인 ‘카미유 비단’에게 뉴타입으로써의 기대를 하며 함께 전장을 헤쳐나갑니다.
Z건담에서 라라아는 등장하지 않지만, 샤아는 카미유 비단의 모습을 통해서 뉴타입의 희망과 절망을 제3자의 눈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Z건담 TV판 결말은 카미유 비단의 정신붕괴로 끝이 나는데, 이것이 샤아가 에우고의 크와트로 바지나 대위에서 네오지온의 총수 샤아 아즈나블로 돌아온 주요 원인이라는 설이 있지요.
카미유는 교감 능력에 있어서 아무로 레이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뉴타입이었는데 마지막에는 온갖 죽은 여자들의 환영(혼령?)과 교감하면서 결국 미쳐버립니다. 샤아는 라라아 슨 한명에도 평생 집착을 하게 되는데, 포우 무라사메, 로자미아 바담 등 수많은 여성 뉴타입과 교감하고 비극을 경험한 최후가 암울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지요.
지구 한랭화 작전이라는 극단적인 것이 샤아에게는 이 모든 일들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데 세계 대전이 두번이나 있었던 20세기 인류의 역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황당무계한 만화같지만 묘하게 설득을 당하는 그런 매력있는 주인공입니다.
Z건담의 주인공이 표면적으로 카미유 비단이지만 시리즈 차원에서 보면 실질적 주인공은 크와트로 바지나 대위, 즉 자신의 신분과 감정을 숨긴 샤아 아즈나블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기동전사 건담은 아무로가 주인공, 기동전사 Z건담은 샤아가 주인공. 그리고… 역습의 샤아는 이 두 주인공의 최종 결말을 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동전사 건담 UC
기동전사 건담 UC는 역습의 샤아 3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건담 UC는 21세기에 우주세기 건담 플롯을 계승하는 정사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역습의 샤아의 마지막 액시즈 쇼크를 주인공 바나지 링크스가 계승하는 형태의 결말을 보면 아무로와 샤아의 대결의 연장선인 것 같기도 합니다.
88년 역습의 샤아의 정식 후계작으로써 기동전사 건담 UC를 보고 다시 역습의 샤아를 본다면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UC의 히로인 오드리 번은 좀 더 새로운 측면이지만 바나지 링크스는 Z건담에서 카미유 비단의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주인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구연방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카디아스 비스트의 아들이고 지온공국 도즐 자비의 딸인 미네바 자비와 뉴타입으로 교감하여 라플라스 사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다시 말해 그 전까지 주인공들 보다 하이 클라쓰의 모습이지요.
건담 UC 세계관에서는 역습의 샤아 스토리는 중요한 역사로써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습이 나옵니다. 건담 UC 스토리의 핵심인 라플라스의 궤(상자)에 대해서는 설정의 허술함이 지적되고는 있지만 어쨋든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까지 이어온 뉴타입 지오니즘의 이념을 이어 나간다는 측면에서 건담 UC가 역습의 샤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라플라스의 상자 이야기는 너무나 허술하다고 생각합니다만(인터넷에도 많은 비판이 있다) 역습의 샤아의 후속작인 것은 맞다 – 는 측면에서는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액시즈 쇼크와 같은 사이코 필드 전개로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모습은 우주세기 건담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역습의 샤아 최종 후반부는 상당히 스토리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서 배경지식이 없이 보는 관람객이라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은데 원래 영화의 결말이란게 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관람하면 그나마 좀 괜찮을 것 같네요.
UC를 본 후 역습의 샤아를 본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역습의 샤아가 1988년 작이고 UC OVA는 2010년 작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함으로써 기존 작품이 리부트가 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토미노 요시유키는 83세 고령이긴 하지만 아직도 현역이고 후배들도 키워놨기 때문에 우주세기에서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가능성은 남아있지요.
건담 UC는 우주세기 건담의 21세기의 해석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릅니다. 영미권에서 비슷한 케이스로는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비교할 수 있는데, 결국 후대에 가면 제작사와 감독이 바뀌어서 올드 팬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일도 있지요.
역습의 샤아 롯데 시네마 후기
그래서 결국 후기가 어땠느냐를 말하면, 필자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120%입니다. 개인 PC시대에 아무리 홈씨어터가 좋아도 극장 스크린의 감동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물론 80년대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CG 기술이나 해상도 등 한계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리마스터링으로 화질 보정도가 높았고 음질이 매우 좋았습니다. 요새는 AI 기술이 좋아져서 100년 전의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들거나 음질을 더 좋게 하는 것도 가능한 시대이지요. 충분히 납득할 만한 퀄러티 였습니다.
역습의 샤아는 88년도에 셀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셀애니메이션이라는게 노가다죠. 수만장의 그림을 애니메이터들이 밤낮없이 수작업으로 그려서 완성되는 시대였습니다. 컴퓨터 CG기술의 사용이 제한적이라서 요즘의 물리엔진 같은 기술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상당한 연출이 좋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1988년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입니다. 1988년의 최신 영화라는 것은 지금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과는 비교도 안되게 조잡한 것들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부분들은 느껴지더군요.
필자는 영화관을 자주 가지는 않습니다. 넷플릭스를 4K 65인치 TV에서 보는데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만, 정말 꽂히는 영화가 나오면 보러갑니다. 조커, 기생충, 탑건 매버릭, 범죄도시 등을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건담의 올드팬으로써 상영관도 별로 없는 역습의 샤아를 보고 왔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여러번 봤지만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온전히 집중해서 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집에서 보면 그런 생각을 잘 안하는데 영화관에서 보면 감독과 대화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장면을 여기서 왜 넣었을까 이 대사가 왜 여기에 있을까? 하나하나 소통하는 기분이 듭니다. 잘 아는 내용일 수록 더 생각이 들지요.
요새 영화 업계가 불황이고 국내에서는 인수합병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영화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홈시어터가 아무리 발달하고 넷플릭스가 재미있어도 공간과 음향적인 감각에서 떨어지죠. 영화관은 장치산업 같은 것인데 그런 장치는 보통 집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올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나니까 그 차이를 알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영화관 스크린에 걸리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역습의 샤아가 국내 상영한 것도 그러한 취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뭐 올드스쿨인 만큼 흥행은 한계가 있겠습니다만, 역습의 샤아를 계기로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수입되기를 바래봅니다. 오늘 가보니까 관람객 수는 매우 적었으나 젊은 여성분 그룹도 있었고, 그런 마니아 문화는 있는 것 같더군요. (옛날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시대적인 괴리감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결론은 퀄리티가 좋으면 보러 간다는 것 입니다. 올드스쿨 건담 극장판이 또 나오면 퀄리티를 기대하고 가보겠습니다.